1978년, 오하이오주의 한 공군기지에서 스물두 살 신참 여성 조종사가 T-38 훈련기 조종석에 처음 앉았다. 당시 미 공군은 여성에게 전투기 조종을 허용하지 않았고, 여성 파일럿의 활동 영역은 수송기와 훈련기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 조종사가 훗날 우주왕복선을 몰게 될 에일린 콜린스였다.
콜린스는 1956년 11월 19일 뉴욕주 엘마이라의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이혼한 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역 공항 근처를 지나다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978년 미 공군 비행학교에 여성 최초 입학 그룹의 일원으로 들어가 파일럿 자격을 땄다.
공군에서 그는 비행 교관과 테스트 파일럿으로 경력을 쌓았다. 특히 테스트 파일럿 스쿨은 당시 실질적으로 우주비행사 선발의 관문 역할을 했는데, 여성에게는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던 영역이었다. 콜린스는 1990년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고, 1995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STS-63) 임무에서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 조종사 자리에 앉았다. 이 비행은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과의 근접 접근 임무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이었다.
이어 1997년 STS-84 임무에서 두 번째로 조종사를 맡았고, 1999년 STS-93 임무에서는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 지휘관에 올랐다. 이 임무는 찬드라 X선 천문대를 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발사 직후 엔진 배선 결함으로 인한 전기 단락과 수소 누출이 겹쳐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콜린스는 침착하게 대응해 임무를 성공시켰고, 이는 그의 조종 실력뿐 아니라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의 마지막 우주비행은 2005년 STS-114였다. 이 임무는 2003년 컬럼비아호 공중분해 참사 이후 첫 우주왕복선 비행이라는 무게를 지고 있었다. 콜린스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접근하기 전 왕복선을 완전히 뒤집는 '후방공중제비(Rendezvous Pitch Maneuver)'를 직접 조종해, 지상 관제팀이 단열재 손상 여부를 카메라로 점검할 수 있게 했다. 컬럼비아호 참사의 원인이 발사 시 떨어져 나온 단열재 파편이었던 만큼, 이 절차는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새로 도입된 것이었고 콜린스의 임무 수행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재개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콜린스는 2006년 NASA를 떠났고, 이후 항공우주 관련 기업 이사와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여성 우주비행사의 길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지만, 본인은 인터뷰에서 "성별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남기며 상징적 지위보다 조종사로서의 역량을 강조해왔다.
여성 최초의 기록을 두 번 쓴 우주비행사
에일린 콜린스는 1956년 11월 19일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고, 훗날 두 가지 '여성 최초' 기록을 세운 우주비행사가 됐다. 첫 번째는 1995년, 우주왕복선을 조종한 최초의 여성이 된 것이고, 두 번째는 1999년, 우주왕복선 임무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관이 된 것이다.
어릴 적 콜린스의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작은 공항 근처를 지나며 비행기를 볼 때마다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후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1978년 미 공군 비행학교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문을 연 시기에 입학해 정식 조종사가 됐다.
당시 미국 공군에는 여성이 전투기를 몰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콜린스는 훈련 교관과 테스트 파일럿으로 실력을 쌓았다. 테스트 파일럿은 새로 만든 비행기를 가장 먼저 시험 비행하는 조종사로,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핵심 경력이었다. 이 길을 통해 1990년 NASA 우주비행사로 뽑혔다.
1995년, 콜린스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조종사가 되어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을 조종했다. 4년 뒤인 1999년에는 STS-93 임무의 지휘관이 되어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이 발사 도중 엔진에 문제가 생겨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콜린스는 침착하게 상황을 넘기고 임무를 완수했다.
그의 마지막 비행은 2005년이었다. 이 비행은 특별히 중요한 임무였는데, 2년 전인 2003년 컬럼비아호가 지구로 돌아오다가 폭발해 승무원 전원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콜린스가 탄 우주왕복선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다시 날아오른 우주왕복선이었다. 콜린스는 국제우주정거장에 다가가기 전 왕복선을 천천히 뒤집는 비행을 직접 해내며, 지상 관제팀이 선체에 손상이 없는지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콜린스는 2006년 NASA를 떠났지만, 여성도 우주선을 조종하고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여성 우주비행사"보다 그냥 "우주비행사"로 불리길 원했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하늘을 보다가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한 아이
에일린 콜린스는 1956년 11월 19일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집 근처에 작은 공항이 있었는데,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저걸 몰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그 꿈은 정말로 이루어졌어요.
콜린스는 자라서 공군에 들어가 비행기 조종사가 됐어요. 처음에는 새로 나온 비행기를 가장 먼저 시험 비행하는 일을 했어요. 마치 새 장난감 자동차가 잘 굴러가는지 제일 먼저 타보고 확인하는 사람 같은 역할이었죠. 이 경험 덕분에 콜린스는 우주비행사가 될 자격을 얻었어요.
그리고 1995년, 콜린스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요. 우주왕복선이라는 커다란 우주선을 조종한 첫 번째 여자가 된 거예요. 그전까지는 여자가 우주선을 조종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콜린스가 그 문을 처음으로 연 거예요.
4년 뒤인 1999년에는 더 대단한 일을 했어요. 우주선의 '대장'이 되어 전체 팀을 이끈 첫 번째 여자가 됐어요. 이때 우주로 커다란 망원경을 실어 보냈는데, 도중에 기계에 문제가 생겼지만 콜린스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해결했어요.
콜린스의 마지막 우주 비행은 2005년이었어요. 이 비행은 특별히 중요했는데, 그전에 다른 우주왕복선에 사고가 나서 우주비행사들이 다치는 슬픈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콜린스는 우주정거장에 가까이 가기 전에 우주선을 천천히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리는 어려운 조종을 직접 해냈어요. 그래야 땅에 있는 사람들이 우주선에 다친 곳이 없는지 사진을 찍어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콜린스는 어릴 적 공항을 바라보던 소녀에서, 우주선을 몰고 지휘하는 어른이 됐어요.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랍니다.
문서 정보
최초 작성
최종 갱신
분류
과학
HANGUL.WIKI가 정리·작성한 문서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공식 출처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의 오류나 정정 요청은 오류·정정 신고로 알려주시면 검토 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