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WIKI

에일린 콜린스

Eileen Collins

2026-07-25
목차 (1개 섹션)

첫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가 되기까지

1978년, 오하이오주의 한 공군기지에서 스물두 살 신참 여성 조종사가 T-38 훈련기 조종석에 처음 앉았다. 당시 미 공군은 여성에게 전투기 조종을 허용하지 않았고, 여성 파일럿의 활동 영역은 수송기와 훈련기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 조종사가 훗날 우주왕복선을 몰게 될 에일린 콜린스였다.

콜린스는 1956년 11월 19일 뉴욕주 엘마이라의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이혼한 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역 공항 근처를 지나다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978년 미 공군 비행학교에 여성 최초 입학 그룹의 일원으로 들어가 파일럿 자격을 땄다.

공군에서 그는 비행 교관과 테스트 파일럿으로 경력을 쌓았다. 특히 테스트 파일럿 스쿨은 당시 실질적으로 우주비행사 선발의 관문 역할을 했는데, 여성에게는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던 영역이었다. 콜린스는 1990년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고, 1995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STS-63) 임무에서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 조종사 자리에 앉았다. 이 비행은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과의 근접 접근 임무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이었다.

이어 1997년 STS-84 임무에서 두 번째로 조종사를 맡았고, 1999년 STS-93 임무에서는 여성 최초로 우주왕복선 지휘관에 올랐다. 이 임무는 찬드라 X선 천문대를 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발사 직후 엔진 배선 결함으로 인한 전기 단락과 수소 누출이 겹쳐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콜린스는 침착하게 대응해 임무를 성공시켰고, 이는 그의 조종 실력뿐 아니라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의 마지막 우주비행은 2005년 STS-114였다. 이 임무는 2003년 컬럼비아호 공중분해 참사 이후 첫 우주왕복선 비행이라는 무게를 지고 있었다. 콜린스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접근하기 전 왕복선을 완전히 뒤집는 '후방공중제비(Rendezvous Pitch Maneuver)'를 직접 조종해, 지상 관제팀이 단열재 손상 여부를 카메라로 점검할 수 있게 했다. 컬럼비아호 참사의 원인이 발사 시 떨어져 나온 단열재 파편이었던 만큼, 이 절차는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새로 도입된 것이었고 콜린스의 임무 수행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재개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콜린스는 2006년 NASA를 떠났고, 이후 항공우주 관련 기업 이사와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여성 우주비행사의 길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지만, 본인은 인터뷰에서 "성별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남기며 상징적 지위보다 조종사로서의 역량을 강조해왔다.

문서 정보

최초 작성
최종 갱신
분류
과학

HANGUL.WIKI가 정리·작성한 문서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공식 출처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의 오류나 정정 요청은 오류·정정 신고로 알려주시면 검토 후 반영합니다.